해외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이 쓸모없는 제도인 이유 (by 로카인양구)

2024. 3. 9. 14:13인문학/로카인양구의 생각 정리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힘 빠지는 일 중 하나가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이다. 학위증명서,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다 마찬가지이다. 사기업에서는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국내 대학원 등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렇지만 사실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은 정말 의미없는 행정편의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개선방안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 보려고 한다.

 

1. '번역공증'이란?

번역공증은 다른 말로 번역문의 인증이라고도 한다. 둘 다 많이 쓰며, 사실상 같은 의미이다. 대한공증인협회에 따르면 번역문의 인증은 외국어로 작성된 증서를 국어로 번역한 경우, 또는 그 반대의 경우에 번역의 정확성을 증명하기 위한 절차이다.

 

외국어번역행정사, 외국에서의 학사 이상의 학위 취득자 등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증서를 번역한 다음에 자격에 대한 증명서를 가지고 공증사무소로 가면 받을 수 있다. 번역문의 인증, 즉, 번역공증은 번역자의 자격 유무를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상, 그 번역문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제도가 아니다.

 

대한공증인협회에 나온 번역문의 인증
대한공증인협회에 나온 번역문의 인증

 

 

 

2. 해외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이 쓸모없는 이유

간단하다. 해외에서 받은 학사 이상의 학위증명서가 번역공증을 받을 수 있는 번역을 할 자격이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하면 해외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은 그냥 그 사람이 스스로 번역했다는 확인일 뿐이다.

 

내가 해외 졸업증명서를 번역해서 공증받는다고 해보자. 공증인은 내 졸업증명서를 보면 따른 자격 확인을 하지 않고, 번역문에 대한 인증을 해준다. 내 졸업증명서 자체가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알고 생각하면 해외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절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해외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이 요구되는 이유

그럼에도 해외 학위증명서에 대한 번역공증이 요구되는 이유도 간단하다. 번역공증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실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글에 '번역 공증'을 검색하면 아래의 사진과 같이 나온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번역공증도 사진 속 글의 내용과 별 다름이 없다. 번역 공증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번역문이 원문과 다름이 없음을 확인하는 절차'이다. 그래서 번역공증을 받는 것이 정확한 번역문을 받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번역공증에 대한 세간의 인식
번역공증에 대한 세간의 인식

 

하지만 위의 내용은 틀렸다. 실제 번역공증은 '소정의 자격을 갖춘 자가 번역했음을 증명하는 절차'이다. 그 번역문이 정확함을 증명하는 절차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공증인이 모든 언어를 다 잘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번역문과 원문이 같은지 확인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현실과 세간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분히 쓸모없고 행정편의적인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공증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번역공증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상당한데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분들도 사실 잘 모르니까 말이다.

 

 

4. 번역공증에 대한 개선방안

번역 공증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번역공증으로 번역문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번역공증이 너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은 없다. 외국어번역행정사에게 인증을 강요하는 방법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아래의 2가지의 문제가 있다. 

 

(1). 외국어번역행정사가 없는 언어도 있다.

소수 언어는 거의 다 외국어번역행정사가 없다.

 

(2). 외국어번역행정사가 해당 분야에서 신청인보다 더 번역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예를 들면 내 공대 성적표를 내가 더 번역을 잘할까, 아니면 외국어번역행정사가 번역을 잘할까? 번역을 해본 사람들은 거의 다 일반적으로는 내가 더 잘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번역행정사에게 인증을 강요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더 효율적이면서도 번역문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는 같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 방안이 있다.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서약서를 주고 번역 공증을 대체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번역했습니다.'라는 내용의 서약과 번역 자격 내용을 적는 것으로 번역 공증 절차를 대체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보이지만 현재의 번역공증과 다를 것 없는 효과를 갖는다.

 

이렇게 되면 해외 학위취득자들도 간단한 서약서로 번역문을 제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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