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인양구의 전역날 심정 및 소감 그리고 후임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

2022. 12. 26. 23:12군대/군대 후기

1. 전역날 아침

결국에 나에게도 전역날은 왔다. 이날만은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전날밤에 12시까지 연등을 하고 나서 불침번에게 5시 40분에 조기기상을 해달라고 말해놓았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 같다. 새벽 5시에 알아서 눈이 떠졌다. 일어나서 조용히 짐정리를 마무리하고 샤워할 준비를 하였다. 40분에 불침번이 들어왔다. 전역날이라서 그런지 눈이 알아서 떠졌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불침번이 부럽다고 하면서 나갔다.

샤워를 마치고 전역날을 위해서만 남겨놓은 A급 군복을 입었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기상시간을 기다렸다. 기상나팔소리가 들렸다. 기상나팔소리가 이렇게 경쾌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전역자도 아침점호에 나오라는 당직사관의 지시에 따라서 아침점호에 나갔다. 크게 함성소리를 지르고 점호를 마치고 막사 내로 들어왔다. 당직사관에게 가자 짐을 챙긴 후에 행정반으로 오라고 했다. 짐을 챙기고 행정반에 갔다. 당직사관이 방송으로 중대원들을 소집했다. 중대원이 모이고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당직사관이 행보관님께서 지금 오고 계시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행보관님께서 부대에서 떨어져 있는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같이 전역하는 알동기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줄 후임 3명과 같이 행보관님을 기다렸다. 나머지 중대원에게는 가서 아침밥 잘 먹고 건강하게 전역하라고 했다.

 

2. 전역날 후임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

나와 알동기, 후임 3명이서 행보관님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말이 없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할 말이 안 떠올랐다. 그렇게 조용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비행기야."

다들 고개를 들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군대는 유리천장이 달려있는 공항 활주로지. 유리천장이 있어서 날수가 없어. 그래서 대다수의 비행기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런데 비행기가 날기 위해서는 먼저 활주로를 달려야 하잖아. 가만히 있던 비행기들은 유리천장이 없어진 순간에도 바로 날 수가 없는 거야. 유리천장이 끝없이 보이는 활주로에서 언젠가 유리천장이 없어진다고 믿고 질주하는 비행기만 유리천장이 없어진 순간에 날 수 있어. 너네는 그런 비행기가 되기를 바랄게. 비록 양구라는 격오지에서 열악한 환경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자기개발을 해서 전역을 준비하길 바래. 이 형이 해줄 말이 이것밖에 없다."

그때 행보관님이 도착하셨다. 행보관님은 행정반에 다녀올 테니 짐을 주차장에 있는 차로 옮겨놓으라고 하셨다. 후임들과 함께 짐을 들고 주차장으로 갔다. 지나가면서 보는 모든 간부님께서 악수를 청하시면서 전역을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악수하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조금 기다리자 행보관님께서 주차장으로 오셨다.

짐을 싣고 후임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인사를 했다. 한 후임이 유독 아쉬워하는 것이 보였다. 나도 아쉬웠지만 더 군대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후임과 악수를 하면서 말을 했다.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시간들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군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넌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치지 말고 전역하길 바래. 나중에 만나게 되더라도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로 만나자. 남의 아들 되지 말고."

후임이 항상 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나도 후임들에게 지금까지 고마웠고 오늘 짐 옮기는 거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차에 탔다.

 

반응형

 

3. 전역하고 군부대를 나갈 때의 기분

행보관님이 운전하는 차가 출발했다. 위병소에서 카메라 잠금 해지를 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카메라 잠금 해지만 하고 나오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위병조장이 전역하냐고 부럽다고 했다. 고생하시라고 하고 나왔다.

차가 위병소를 통과하여 군부대를 나왔다. 이럴 때 기분이 매우 좋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보충중대에서 처음 이 부대로 온 날이 잠깐 생각났지만 그뿐이었다. 정말 그 외의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4. 터미널에서 알동기와 행보관님과 작별인사를 하다.

차가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알동기가 버스표를 샀다. 나는 짚라인을 타면서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버스표를 사지 않았다.

행보관님이 다시 부대로 돌아가시기 전에 행보관님께 악수를 청하면서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씀드렸다. 행보관님은 악수가 뭐냐 안아줄게 하고 안아주시면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부대로 떠나셨다.

서울 가는 버스가 도착하였다. 알동기가 버스로 향했다. 알동기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알동기도 그렇게 말하고 버스에 탔다. 다른 중대 전역자들과도 비슷하게 인사를 했다.

 

 

5. 서울가는 버스에서 느낀 전역날 소감 및 심정

버스가 떠났다. 나는 택시를 잡아서 한반도섬으로 갔다. 그리고 집라인을 탔다. 터미널로 가서 춘천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 가는 버스표 시간이 애매해서 춘천행 버스를 타고 춘천가서 서울행 버스로 갈아타기로 했다. 그렇게 양구에서 춘천가는 버스가 출발했고, 춘천에서 서울가는 버스에 탔다.

전역하고 서울가는 버스를 마지막으로 탈 때는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 줄 알았다. 무지개가 걸려있고 장미꽃이 곳곳에 피어있는 푸른 오아시스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줄 알았다. 그렇게 매우 기분이 좋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오랜 군생활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갈 줄 알았다. "현 시간부로 저녁점호를 실시하겠습니다!"라고 쩌렁쩌렁한 육군훈련소의 당직부사관의 목소리로 시작하던 훈련소의 저녁점호부터 시작하여, KCTC훈련으로 고생했던 나날들, 무전근무로 밤새우던 날들, 열약한 부대환경에서도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 너무나 다양했던 군대 사람들 등등 군생활의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이 떠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모든 순간이 지구 반대편의 나라, 아니, 은하수 반대편의 나라의 고대사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다만 시원섭섭한 느낌이 조금 들었을 뿐이었다.

전역날에 느낀 전역은 무지개 모습도, 장밋빛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던 어느 서양철학자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일 뿐이었다.

전역날 짚라인 타면서 찍은 사진
전역날 짚라인 타면서 찍은 사진

 

 

반응형